'클리비지 룩의 귀환' 논쟁이 안고 있는 문제점
‘패션 가슴’부터 푸시업 브라까지, 현재 여성의 몸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지난 10년 가까이 클리비지 룩은 유행이 지났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브랄렛과 노브라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의 여러 비평가들은 푸시업 브라(그리고 클리비지 룩)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가슴을 턱 끝까지 끌어올린 울트라 패딩 브라가 런웨이와 레드 카펫을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가슴 크기를 패션의 선택지로 여겨본 적 없는 이들에게 이는 어떤 의미일까?
최근 몇 년간 인터넷의 담론은 온통 작은 가슴(일명 ‘패션 가슴’)에 집중되어 있었다. 미니멀한 가슴 사이즈야말로 새로운 잇걸의 액세서리이며, 시어 톱과 컷아웃 디자인 안에 받쳐 입으면 섹시하면서도 시크한 무심함의 상징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형태가 잡힌 언더와이어 브라(그리고 클리비지)는 가슴이 큰 여성들의 옷장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이는 그들이 선택한 트렌드가 아니라 기능적인 서포트와 그들의 신체가 늘 필요로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브라가 “돌아왔다”며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주로 작은 체형에 다시 등장했음을 의미하며, 필요에 의해 착용하기보다 패션 스테이트먼트로 스타일링되고 있다. 그렇다면 하이패션에서 클리비지 룩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면 가슴이 큰 여성들에게도 발전적인 일일까? 곡선미가 있는 체형을 대하는 패션계의 복잡한 태도를 고려할 때,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번 2027 봄/여름 패션위크 시즌은 톱으로 스타일링한 브라와 의도적으로 깊게 파인 네크라인을 통해 연출된 전략적인 피카부 모먼트로 가득했다. 세븐포올맨카인드(7 For All Mankind)에서는 스쿠프 넥 티셔츠가 가슴선 아래까지 파여 있었고, 라콴 스미스(LaQuan Smith)는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상의 구조적인 발코넷 브라를 드러내는 오픈 셔츠를 선보였다. 크리스찬 코완(Christian Cowan), 모와롤라(Mowalola), 프라다(Prada), 펜디(Fendi) 모두 가슴을 전면에 내세웠고, R&M 레더스(R&M Leathers)는 수제 브라를 중심으로 전체 쇼를 구성했으며 톰 포드(Tom Ford)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패션계의 새로운 열망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가슴이 몇 사이즈 더 컸더라도 과연 동일한 대우를 받았을지는 의문이다.
런웨이 밖의 팝스타들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핑크팬서레스(PinkPantheress), 애디슨 레이(Addison Rae),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찰리 XCX(Charli XCX), 캣츠아이(KATSEYE),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 모두 브라를 톱으로 활용한 무대 의상을 선보였다. 또한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은 푸시업 브라의 전통을 기리는 캠페인을 론칭했고, 언더데이즈(Underdays)는 브랜드 최초의 브라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러한 수요는 분명 실재하며, 진정으로 환영할 만한 요소도 존재한다. 소녀스러움과 순수함이 패션의 한 축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다른 한편에서 성적 매력을 부드러운 것이나 숨겨야 할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가슴이 큰 여성들에게 클리비지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구조적이고 와이어가 있는 지지력은 가슴이 큰 많은 여성에게 여전히 현실적인 필요성으로 남아있다. 브랄렛이 유행한다고 해서 그들의 몸이 갑자기 촌스러워진 것도 아니며, 클리비지가 더 이상 멋지지 않다고 단체로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다. 사실 가슴이 큰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최소화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패션계에서 수년 동안 고군분투해왔다.
2023년 하입베이(Hypebae)가 패션계에서 가슴이 큰 체형이 지속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다룬 이후, 업계는 분명 이를 드러내는 데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시성이 곧 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가슴을 가진 모델이 깊게 파인 네크라인을 입으면 화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같은 네크라인을 큰 가슴에 적용하면 갑자기 “과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특정 신체 부위가 “돌아왔다”고 선언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슴이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몸은 스키니 진처럼 패션의 유행에 따라 변하는 트렌드 주기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가슴이 큰 여성들이 주류 실루엣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패션계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물론, 논의는 양방향으로 진행된다. ‘패션 가슴’ 담론은 가슴이 작은 여성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고, 이제 푸시업 브라는 클리비지 트렌드에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즉 더 작은 실루엣을 위해 가슴을 변형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어쩌면 클리비지의 귀환은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다. 런웨이에서 더 다양한 가슴을 보게 된다면, 디자이너들은 마침내 가슴의 크기, 모양, 비율이 단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푸시업 브라의 유행은 퇴보라기보다 여성이 성적으로 옷을 입는 것이 무조건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계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패션계가 클리비지라는 개념을 찬양하는 것을 멈추고 실제로 그것을 가진 몸을 수용하기 시작해야 한다. 푸시업 브라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를 위해 돌아온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